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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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



파우스트 by 편린


파우스트  : (...중략)
우리가 아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걸 깨닫고 보니
내 가슴은 거의 타버릴 것만 같다.
하기야 박사니 석사니 문필가니 목사니 하는
온갖 멍청이들보다는 현명한 편이지.
나는 회의나 의혹 따위로 괴로워하지 않고,
지옥이나 악마 따위도 두려워하지 않으니까 ---
그 대신 모든 즐거움은 사라져버리고,
무언가 올바른 것을 알았다는 자부심도 없으며,
인간을 선도하고 개선시키기 위해
그럴싸한 걸 가르칠 자신도 없구나.
그렇다고 재산과 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이 세상의 명예나 영화도 누리지 못하니
개라도 더 이상 이 꼴로 살기는 원치 않으리라!
하여 나는 마법에 몰두하였다.
정령의 힘과 말(言)을 빌어
많은 비법을 알 수 있지나 않을까 해서다.
그리 되면 더 이상 비지땀 흘려가며
나도 모르는 걸 지껄일 필요가 없을 것이요,
이 세계를 가장 내밀한 곳에서
통괄하는 힘을 알게 되고,
모든 작용력과 근원을 통찰함으로써
더 이상 말(言)의 소매상을 벌이지 않아도 될 것이다.
/1부, p30

파우스트 : 어떤 옷을 입든 이 비좁은 지상의 삶에서
나는 여진히 고통을 느끼지 않을 수 없으리라.
그저 놀기만 하기엔 너무 늙었고,
소망 없이 살기엔 너무 젏었다.
세상이 내게 무엇을 줄 수 있단 말인가?
부족해도 참아라! 부족해도 참아라!
이것이 영원한 노래다.
누구의 귓전에든 울리는 그 노래,
우리의 한평생을
시시각각 목쉰 소리로 들려온다.
나는 아침마다 두려운 마음으로 깨어난다.
쓰디쓴 눈물 흘리며 울고 싶어지는 것은,
하루가 다 지나도록
한 가지도, 단 한 가지 소망도 이루지 못한 때문이며,
모든 쾌락에의 예감조차
집요한 비판으로 감소되고,
가슴 속에 약동하는 창조의 열정도
오만가지 세상 일로 방해받기 때문이다.
밤의 장막이 내려도 나는
불안한 마음으로 자리에 누워야 하노니,
여전히 안식을 얻지 못하고
갖가지 사나운 꿈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내 가슴 속에 살아 있는 신은
내 마음 깊은 곳까지 움직일 수 있지만,
내 모든 힘 위에 군림하는 신은
바깥을 향해선 아무것도 움직일 수가 없다.
그리하여 내겐 존재한다는 것이 짐이 되고,
죽음이 바람직할 뿐, 인생이 역겹구나.
/1부, p89-90

파우스트 : 나는 오로지 세상을 줄달음쳐 왔을 뿐이다.
온갖 쾌락의 머리채를 붙잡았지만,
흡족하지 않은 것은 놓아버리고,
빠져나가는 것은 내버려두었다.
나는 오직 갈망하면서 그것을 성취하였다.
또한 소망을 품고 기운차게
평생을 질주해 왔다. 처음엔 원대하고 힘차게,
지금은 현명하고 사려 깊게 해나간다.
지상의 일은 낱낱이 알고 있지만,
천상을 향한 전망은 끊어져버렸다.
눈을 꿈벅거리며 하늘을 향해
구름 속의 자신을 꿈꾸는 자는 바보로다!
이곳에 굳건히 서서 주위를 둘러볼 일이다.
유능한 자에게 이 세상은 침묵하지 않으리라.
무엇 때문에 영원 속을 헤맬 필요가 있을까!
인식한 것은 손아귀에 잡을 수 있는 법,
이렇게 지상의 나날을 보내는 게 좋으리라.
도깨비는 날뛰어도 내 갈 길만 가면 된다.
어떤 순간에도 만족을 모르는 자,
그가 나아가는 길엔 고통도 행복도 함께 있겠지!

근심 : 누구든 내게 한번 붙잡히면,
온 세상이 쓸모 없게 되지요.
영원한 어둠이 내리덮여서
해는 뜨지도 지지도 않고,
외부의 감각이 완전하다 해도
내부엔 어둠이 자리잡게 됩니다.
온갖 보화 중 어는 것 하나도
제것으로 소유할 수 없어요.
행복도 불행도 시름이 되어
풍족한 속에서도 굶주리게 되지요.
환희든 고뇌든 간에
다음날로 밀어젖히고,
그저 앞날만을 고대할 뿐
결코 아무것도 이루질 못해요.

파우스트 : 닥쳐라! 그 따위에 난 꿈적도 않는다!
그런 허튼소리는 듣고 싶지도 않다.
썩 꺼져라! 그 고약한 푸념을 계속 늘어놓으면,
아무리 영리한 자도 넘어가지 십상이겠다.

근심 : 가야 할까, 와야 할까?
그런 자는 결단을 내리지 못해요.
훤히 트인 길 한복판에서도
갈팡질팡 뒤뚱거리지요.
길을 잃고 점점 깊이 들어가
온갖 것을 다 비뚜로 보는 거예요.
자신과 타인의 성가신 짐이 되어
숨을 쉬면서도 질식할 지경이지요.
숨막혀 죽지는 않으나 생기는 없고,
절망은 않으나 몰두할 수가 없어요.
이렇게 줄곧 굴러만 다닐 뿐,
그만두자니 괴롭고 억지로 하자니 불쾌한 거지요.
때로는 해방되고 때로는 억압당하며,
자는 듯 마는 듯 몽롱한 상태로
꼼짝없이 제자리에 못박힌 채
이제 지옥 갈 준비나 하는 거지요.

파우스트 : 못된 유령들아! 너희들은 그런 수작으로
천번 만번 인간을 괴롭히고 있구나.
아무 탈 없는 나마저 너희들은
그물에 얽힌 고통의 불쾌한 혼란으로 바꿔놓았다.
악령에게서 벗어나기 어려움을 나도 안다.
정령과 맺은 엄한 유대는 풀 수가 없다.
하지만 근심이여, 살며시 기어드는 그 큰 힘을
나는 결코 인정하지 않겠다.

근심 : 저주의 말과 함께 재빨리
당신을 떠날 때, 내 위력을 알 거요!
인간이란 한평생 앞을 보지 못하니,
파우스트, 당신도 이제 장님이 되세요!

파우스트에게 입김을 내뿜는다

파우스트 : (눈이 먼다) 밤이 점점 깊어가는 것 같구나.
하지만 마음속엔 밝은 빛이 빛난다.
내가 생각했던 것을 서둘러 완성해야겠다.
주인의 말보다 위력이 있는 것도 없으리라.
여봐라, 하인들아! 모조리 자리에서 일어나거라!
내가 대담히 계획했던 일, 멋지게 이루어다오.
연장을 잡아라. 삽과 괭이를 놀려라!
맡은 일은 반드시 해치워야 한다.
엄격한 규칙대로 열심히 일하면,
비할 데 없이 좋은 보수를 받으리라.
이 위대한 일 완성하는 데는
수천의 손 부리는 하나의 정신이면 족하리라.
/2부, p357-360

 /파우스트/요한 볼프강 폰 괴테/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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