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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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



똑바로 걸어간 사람 by 편린


 단풍잎과 은행나무잎이 가을바람에 흩날리는 어느 오
래된 절에서 그를 본 사람이 있다.

 일주문을 지나서 사천왕문에 다다를 때까지 그는 직
선을 그어넣고 그 위를 밟으며 가듯, 곧바로 걷고 있었
다는 것이다. 다리를 쩍 벌리고 여덟팔자걸음을 걷는 관
광객들 틈에서, 그는 준수한 사슴의 모습처럼 환하게 눈
에 띄었을 것이다.

 그가 결코 직선으로 걷는 연습을 한 것은 아니라고 믿
는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평생을 똑바로 걸어론 사람이
기 때문이다.

 속임수도 에움길도 모르고 오로지 한 길을 뚜벅뚜벅
걸어온 그는 그렇게 우리 곁을 지나갔다. 조금도 서둘지
않고 똑바로 걸어서 우리를 앞서더니, 어느새 까마득히
멀어지다가,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우리는 말을 잃고,
홀린 듯이 그쪽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자취도 보이지 않
았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그가 떠난 것을 너무 늦게 알았던
것이다.
 
 나중에 어느 천주교 성지에서 여전히 꼿꼿한 자세로
걸어가는 그의 모습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다.
 언젠가 갑자기 그와 마주치게 되지 않을지, 헛된 희망
을 품고, 우리는 오늘도 그를 뒤따라가고 있다.
 낙엽을 밟고 가는 그의 발소리나, 그의 카랑카랑한 목
소리가 저 앞에서 들려오기를 기다리는 마음 간절하다.

 어쩌면 그것은 우리의 뒤쪽에서 곧바로 눈길을 걸어
오는 젊은 목소리로 들려올지도 모른다.

 /김광규/처음 만나던 때/똑바로 걸어간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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