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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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



안토니오 그람시 by 편린


#1

공장평의회는 소비에트의 이탈리아적 등가물로 시작되었지만 점차 군사적인 투쟁조직을 넘어서게 되었는데, 이는 '신질서'의 성격을 살펴보면 잘 이해할 수 있다. 우선 여타 좌파들과는 달리 '신질서'는 자신의 이론을 토리노의 노동계급 운동과 구체적이고 직접적으로 연결시켰다. 즉, 소비에트 체제의 현실화를 위한 프로그램을 제시하고, 평의회가 과거의 전통적인 조직과는 다른 새로운 전체 프롤레타리아트의 기구라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다음으로 '신질서'는 공장평의회와 이를 기초로 한 지역 소비에트를 미래 사회주의 국가의 맹아로 보고, 생산의 조직체 속에서 권력문제를 포착해 낼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주의 국가의 이러한 '예시적(prefigurative) 성격'이야말로 '신질서'라는 제호가 의미하는 바였다. 노동계급의 새로운 질서는 메시아적인 혁명 이후에 도래하는 것이 아니라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구체적인 실천과 조직 속에서 이미 잠재하고 있으며, 인간의 의식적인 투쟁 속에서 건설되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이다. /p20-22

더욱 중요한 것은 혁명과 이행의 성격에 대한 그람시의 판단으로, 그는 정치권력의 장악이 혁명의 첫 단계이지만 그것 자체로는 프롤레타리아적인 성격마저 보증할 수 없다고 보았다. 그람시는 부르주아 제도에 대한 파괴라는 하나의 혁명과 공산주의 노선에 따른 재건과정으로서의 또 다른 혁명이 불가분하게 맞물려 있다고 이해했다. 때문에 그람시에게 필요한 것은 "프랑스 자코뱅의 영웅적인 모방을 위해 대중을 이용하는 정당이 아니라 스스로 노력을 통해 자율적으로 사회적인 경제를 조직함으로써 정치적이고도 산업적인 노예상태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대중을 대변할 정당"이었지, 고답적인 혁명가들이 봉기와 주장만을 일삼는 그런 공산당이 아니었던 것이다. /p29-30

#2

비록 구체적인 정치상황에 대한 정보는 제약되어 있었으나, 옥중의 그람시는 보다 냉정하게 자본주의 국가의 복잡성과 견고성을 간파하고 새로운 혁명이 갖추어야 할 요소들을 정리해 낼 수 있었다. 그람시는 최근에 노동계급이 패배한 이유를 밝히는 것 못지않게 미래에 승리하기 위한 조건들을 그려보는 것이 자신의 과제라고 간주했다.

그람시는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과 인간의 활동을 바꾸는 것, 즉 자기 변화를 동시에 일으키는 것은 오직 혁명적인 실천으로만 파악될 수 있고 합리적이로 이해될 수 있다"는 마르크스의 '포이에르바흐에 관한 테제'의 주장을 가장 전면적으로 파악한 마르크스주의자였다. 그렇다고 이것이 사적이고 맹목적인 실천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역사적이고 의식적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집단적인 실천이다. 그람시에게 있어 이는 '정치'와 동의어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그람시에게 있어서 '정치'란 무엇이었는가? 그람시가 보기에 마르크스주의적인 분석은 변화시키려는 입장에서 그 상황 속의 여러 세력들의 관계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이어야 했다. 여기에는 적어도 다음의 세가지 '계기' 내지는 '차원'이 존재하며, 이것들을 뒤섞지 않고 분별해 내는 것은 결합시키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

우선, 제반 사회세력은 인간의 의지와는 독립되어 있으며, 그것은 엄밀한 과학 또는 물리학의 체계로 측정될 수 있다. 이런 기초 위에서 우리는 어떤 특정한 사회의 벼녁을 위한 필요조건과 충분조건을 그 사회 내에서 알아볼 수 있다. 둘째, 정치적인 세력관계, 즉 다양한 사회계급들이 갖고 있는 동질성, 자각, 그리고 조직에 대한 평가가 필요하다. 셋째로 군사적인 세력관계에 대한 평가가 최종적으로 요구된다. 그람시는 "역사적인 발전은 두 번째의 계기, 즉 정치적인 세력관계라는 매개를 통해 첫 번째의 계기와 세 번째의 계기 사이를 왕복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한다. 물론 여기서 그가 특히 관심을 기울인 것은 바로 두 번째의 계기, 즉 정치의 매개라는 계기였다. /p51-53

(...중략) 그람시는 전통적인 지식인 도는 부르주아의 전문가들과 구별되는 '유지적인 지식인'이라는 존재를 제시했다. (...중략) 물론 노동자가 지적 노동에 참여하고 체계적으로 학습한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며 노동계급의 유기적 지식인은 노동계급이 국가권력을 획득한 후에야 비로서 이루어질 수 있다는 사실 역시 그람시는 소홀히 하지 않았다. 때문에 그람시는 대중의 집단적인 이성을 신뢰했지만 자생성을 무조건 찬양하지도 않는다. 대중의 자생적인 감정과 현대의 이론(마르크스주의) 사이에는 질적인 차이가 아니라 오직 양적인 차이만이 있으며, 한쪽으로부터 다른 한쪽으로 또 그 역으로 전환활 수 있는 상호환원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중략) 그에게 있어 자생성과 의식성 사이에는 언제나 당과 유기적 지식인의 적극적인 활동과 변증법적인 과정이 전제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람시에게 있어 사회주의는 '진지전(war of position)' 이라 표현되는 장구하고 어련 과정을 의미하게 된다. (중략...) /p55

#3

그람시를 이야기할 때마다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는 '헤게모니'란 도대체 무엇일까? (...중략) 그람시는 정치적인 행위에 대한 '이중적 관점', 즉 '강제와 동의' 또는 '지배와 헤게모니'의 관점을 요청했고, 여기서부터 헤게모니를 서구 부르주아 권력에 대한 차별화된 분석에 이용한다. 부르주아지의 지배는 물리적인 강제 또는 그에 관한 위협을 통하는 것만큼이나 시민사회에서 성취되는 대중의 '동의'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는 특히 국가기구를 통한 교육, 미디어, 문화, 법적 제도가 강력하고 광범한 의식을 형성하는 서구 사회에서 두드러진다.

그람시에게 강제와 동의의 순수한 사례는 없으며, 단지 두 차원의 상이한 결합만이 있을 뿐이다. 헤게모니는 경제적이고 행정적인 영역에서만 행사되는 것이 아니라 문화.도덕.윤리.지적인 지도라는 영역을 포함한다. 몇몇의 역사적인 '프로젝트' - 예를 들면 사회를 근대화시키는 것, 사회의 성취수준을 고양시키거나 국가정치의 기반을 형성시키는 것 - 가 효율적으로 배치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그러한 조건 하에서 뿐이다. 지배/지도, 강제/동의, 경제적.조합주의적/도덕적.저적 간의 구별의 복합적인 활용을 통해 우리는 그람시에게서 '헤게모니' 개념이 확장되는 것을 살펴볼 수 있다. /p60-63

이러한 확장을 강화하는 것은 그람시의 또 다른 역사적인 테제들의 구분인 '국가/시민사회'에서 비롯된다.(...중략) 우선 그는 투쟁의 두 유형을 구분해 냈다. 하나는 '기동전(war of maneuver)'인데 여기에서는 모든 것이 하나의 투쟁과 전선으로 집중되어 '짓쳐 들어가서 결정적인(전략적인) 승리를 얻을' 수 있게 하는 전술로, '적의 방어'에 단 하나의 전략적인 틈새가 있는 경우에 사용할 수 있는 투쟁유형이다. 두 번째로 '진지전(war of position)'이 있는데 이는 상이한 그리고 다양한 투쟁전선을 가로질러 지속적으로 수행되어야 하며 여기에는 '전광석화처럼' 승리할 수 있는 돌파구는 거의 없다. 진지전에서 중요한 것은 적의 '전진참호들'이 아니라 '전장의 군대 후방에 위치한 조직.산업적인 체계', 즉 시민사회의 구조와 제도들을 포함하는 사회의 전체구조이다.

이는 '동구'와 '서구' 간의 두 번째 구분과 연결된다. (...중략) 그람시는 오랫동안 지체된 근대화, 팽창된 국가기구와 관료제, 상재적으로 미발전된 시민사회 및 낮은 수준의 자본주의 발전이라는 조건을 지녔던 혁명 이전의 러시아와, 대중민주주의적인 형식들과 복잡한 시민사회를 지니고 있고 정치적인 민주주의를 통해 대중의 동의를 기반으로 삼고 있는 '서구' 사이의 중요한 구분을 이끌어내고 있다. (...중략) 그람시는 '서구'의 조건이 근대 정치영역의 특성으로 자리잡아감에 따라 '진지전'이 점차 '기동전'을 대체하고 있다고 보았다. 여기에서 '서구'는 지리적인 동일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국가와 시민사회에서 새로이 나타나는 형식들 및 그들 사이의 새롭고 보다 복합적인 관계에 의해 창출된 정치의 새로운 영역을 나타낸다.

'옥중수고에서 그람시는 '선진적인' 사회들에서 시민사회의 상부구조는 '근대적인 전쟁의 참호체계'와 같다고 적고 있다. (...중략) 이렇게 본다면 노동계급의 혁명의식에 대한 부재는 어떤 역사적인 이벤트나 노동계급의 자체의 미성숙에서 비롯되었다기보다는 자본주의 발전의 내재적인 과정에서 비롯한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마르크스가 "모든 시대의 이데올로기는 그 시대 지배계급의 이데올로시"라고 말한 것 이상의 주의와 관심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중략) 결국 '진지전의 문제틀은 두 가지의 중요한 함의를 갖는데, 하나는 시민사회의 변형이 국가권력을 둘러싼 투쟁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새로운 국가체제는 소수가 아닌 대중적인 기반 위에 건설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p63-68

#4

이제 헤게모니와 진지전의 문제는 다시 이데올로기라는 전장(戰場)으로 집약된다. 그람시가 볼 때 이데올로기는 두 가지 구별되는 '층위'로 이루어진는 듯하다. 어떤 이데올로기의 일관성은 전문적인 철학적 정교화에 의존하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형식적 일관성이 그 이데올로기의 유기적이고 역사적인 효과를 보장할 수는 없다. 그것은 단지 철학적 조류들이 대중의 실천적이고 일상적인 의식이나 통속적인 사고에 들어가서 그것을 변화시키고 변형시킬 때만, 그리고 그러한 곳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그가 '상식'이라고 부른 것이 바로 그 장소이다. (...중략) 그람시가 이데올로기를 취급하는 방식을 특징 짓는 것은 바로 대중적 사고의 구조들에 대한 이러한 관심이다. 그러므로 생각이라는 것을 하는 한 모든 사람은 나름대로 철학자이거나 지식인이라고 그람시가 주장한 것은 인간의 모든 사고, 행동, 언어는 성찰적이고, 도덕적 행동에 대한 의식적 방향을 포함하며, 따라서 특정한 세계관을 뒷받침하기 때문이다.

그람시는 사상은 유동적인 것이며 이데올로기는 자생적으로 그리고 아무런 정해진 방향 없이 발전하는 것이라고 보는 일체의 관념을 거부했다. (...중략) 그람시는 혁명적 변혁이 사회의 모든 측면들, 즉 인간 존재의 모든 차원을 포괄하여 '총체적'으로 진행되어야 진정한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부르주아 사회의 어떤 영역도 절대 계급투쟁의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며, 미신이나 신화 같은 인간적 관심사들까지도 사회주의 정치와 무관하지 않음을 강조했다. 때문에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 문화, 사회적 관계, 이데올로기를 포함하는 '관계의 총체(emsemble)'를 인식하는 한, 하나를 변혁하려는 투쟁은 모든 것, 즉 총제적인 것들을 변혁하고자 하는 투쟁과 필연적으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선진 자본주의 사회를 대상으로 하는 마르크스주의 문화혁명 이론의 단초라 할 것이다. /p68-70

#5

'옥중수고'에 실려있는 '미국주의와 포드주의'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논문이다. 이 글 전체는 혁명적인 노동계급 운동이 전 세계에서 후퇴와 패배의 국면에 들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대립하는 혁명적인 세력에 부재하게 되면 '수동적인 혁명'만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 결론 못지않게 이 글이 중요한 이유는 상황의 유동성과 모순의 복잡성을 그람시가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람시는 자본주의의 새로운 발전이 낳을 모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하는 문제를 던졌다.

자본주의적인 생산방식으로 포드주의가 일반화 되면서 대량 생산과 대량소비가 연속적으로 일어난다. 이 과정에서 노동계급의 생활방식은 '물질적인 궁핍'으로부터 벗어날 가능성이 열리게 된다. 하지만 여기서 노동자의 전투적이고 적대적인 계급의식은 시민사회적인 규범과 질서의식으로 바뀔 수도 있다. 생산방식의 변화는 노동계급에게 동전의 양면을 작용하기 때무이다. 그람시가 '수동적인 혁명'에 대해 언급하는 것도 바로 이런 맥락에서이다. 소비에트 혁명과 같이 노동계급이 주도하여 주체적으로 '능동적인 혁명'을 이루는 것과 반대로 자본주의적인 생산방식의 변화에 순응 혹은 적응하면서 계급적인 자의식을 상실한 노동자 대중이 형성될 가능성을 그람시가 가장 먼저 본 것이다. /p71-72

그는 동시대의 다른 마르크스주의자들과는 달리 자본주의의 체제의 강점을 철저히 인식했던 거의 유일한 혁명가였으며 정치와 이데올로기의 상대적인 독자성을 이해하고 마르크스주의에서 공백으로 남아 있던 정치학의 영역을 구축한 독창적인 이론가였다. 다음으로 그는 처음부터 "자본에 반한 혁명'인 러시아 혁명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동시에 스탈린주의 소연방의 퇴행과 당의 체제도구화를 외부에서 비판할 수 있는 자원을 발전시켰다. 또한 당시 유럽의 일부이되 그 변방이었던 이탈리아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함께 통찰해 냄으로써 선진국의 혁명모델과 제3세계 혁명론에 다같이 풍부한 함의를 던져준 사상가였다. /p87-88

 /안토니오 그람시/김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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