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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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



프롤레타리아여 안녕_파괴적 성장과 생산의 저성장 by 편린


다른 식으로 말하면, 우리는 자본주의의 틀 내에서는 생산력이 발전한다 하더라도 공산주의의 문턱에도 이르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상품의 본성, 기술, 생산관계들이 필요를 지속적이고 공평하게 충족하는 일은 물론, 공동체가 충분한 것으로 받아들인 수위에 맞게끔 사회적 생산을 안정화하는 일을 배제하기 대문이다. 어느 날엔가는 모두가 충분한 부를 소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더 많은 양'과 '더 나은 것'을 추구하는 일 대신에 경제 외적(外的)이고 비상업적인 가치들을 추구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 자체가 자본주의 사회에게는 낯선 것이다. 반대로 그 생각은 공산주의에 본질적인 것이다. 그리고 이 공산주의는 자율 제한, 안정화, 공평, 무상성(無償性)과 관련한 사상들이 실제적인 예증을 거칠 때만 현재의 시스템을 긍정적으로 부정하는 형식이 될 수 있다.

따라서 현 시스템을 대체한다는 것은 가내경제와 마을 자급자족의 시대로 회귀한다는 것도, 모든 활동들을 완전하고 계획적으로 사회화 한다는 것도 의미하지 않는다. 반대로 그 일은 각자의 삶에서 그 일이 만족스럽건 그렇지 않건 간에 필수적으로 해야 할 일을 최소한 줄인 다는 것, 그리고 그 자체가 목적인 자율적이고 집단적이고(/이거나) 개인적인 활동들을 최대한 늘린다는 것이다.

또한 국가가 개인을 완전하게 책임지는 일도, 개인이 물적 시스템으로서의 사회의 기능에 내제한 필연성의 일들을 책임지는 일도 거부되어야 한다. 개인을 국가와, 개인적 행복과 국가의 요구사항들을 동일시하는 일이 전체주의가 갖는 두 얼굴이다.

국가권력의 독점을 유지하는 데 신경을 곤두세우는 정당들은 지금 정치가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 못하게끔, 다른 형태로 태어나지 못하게끔, 다른 지형에서 태어나지 못하게끔 시도하고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당들에 대한 불신은 커진다. 우리는 그것들의 자살행위를 즐기면서 바라봐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정치의 죽음과 더불어, 절대국가의 탄생이 예고되기 때문이다. /p201-204

 /프롤레타리아여안녕/앙드레고르/이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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