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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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



프롤레타리아여 안녕 by 편린


1.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마르크스의 프롤레타리아 이론은 계급대립에 대한 실증적 연구나 프롤레타리아의 근본성격에 대한 정치투사로서의 경험에 근거한 것이 아니다. 아무리 관찰을 하거나 정치투사의 경험을 하더라도 프롤레타리아의 역사적 사명, 즉 마르크스식으로 말하면 그 계급적 존재의 가장 중요한 측면을 구성하는 역사적 사명을 발견할 수 없다. ...(중략) 다른 식으로 말해, 프롤레타리아의 존재는 프롤레테르들에 대해 근본적으로 선험적이다. 프롤레타리아 존재로 인해 프롤레테르들은 올바른 계급노선을 선험적으로 보장받는다. /p15-16

...(중략)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 이론이 실증적 관찰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헤겔철학에 반대하며 노동의 본질에 대해 수행한 비판적 사고에서 나왔다는 사실이다.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존재가 젊은 마르크스의의 이론을 정당화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오히려 반대로 마르크스의 이론이 혁명적 프롤레타리아의 출현을 예언케 했고 그 출현을 필연적인 사실로 정립시켰다. 철학이 우위를 점했다. 철학이 현실 상황들을 앞질러 예견했고, '역사'가 모든 사회를 해방시킬 유일하게 보편적인 계급을 프롤레타리아를 통해서 출현시키는 일에 의미를 둔다는 이론을 정립했다. 이 계급은 출현해야만 했고, 실제로 이런한 징후들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징후들은 철학자만 이해할 수 있었다. /p21-22

문제제기 방식이 문제해결 방법을 결정짓는다. 만일 내가 다음과 같이 문제를 제시한다면 그 방법과 결과는 확실히 상당히 달라질 것이다. "프롤레타리아는 혁명적이지 않기 때문에, 그들이 여전히 혁명적일 수 있는지, 그리고 왜 우리는 그들이 혁명적이라고 오랫동안 믿을 수 있었는지 살펴보자." /p26

2. 집단소유의 불가능성

마르크스는 프롤레테르가 계급적 존재로서뿐만 아니라 개인으로서 어떤 유형의 노동자든 될 수 있고, 어떤 노동이든 할 수 있어야 하는 사명을 지녔다는 주제로 평생 동안 계속 되돌아왔다. 그런데 마르크스와 이후 마르크스주의자들이 해결해야 했던 커다란 숙제는 계급을 구성하는 개인들 내에서 계급이 어떻게 육화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초기에 마르크스는 이 문제에 대해 중대한 논리를 전개하려 했으나 답을 얻지 못했다. /p30

이런 식으로 프롤레타리아의 단결과 보편적 가능성으로서의 노동은 프롤레테르들의 의식으로부터 멀어졌다. 세계와 역사를 창조하는 계급이 집단적으로 갖고 있다고 판단했던 전능이 구성원 내면에 옮겨가고, 이어서 자신을 의식하는 주체가 되기에는 완전히 무력하다. 이 계급은 집단적으로는 모든 생산력을 발전시키고 이용하지만, 생산력을 전부 소유하기에는 무력하다. 전 생산력을 고유한 목적에 따라 이용하거나 자기의 고유한 수단으로 인식할 수 없다. 간단히 말해, 노동자 집단은 프롤레타리아들에 대해 외재해 있다. 자본주의는 뼈와 살을 가진 프롤레테르들이 노동자집단에서 자기 모습을 알아보고, 노동자 집단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노동자집단을 자기의 현실과 가능성으로 내면화하는 일이 불가능하게끔 생산구조를 발전시켰다. /p37

3. '자본'의 복제품 프롤레타리아

...(중략) 어떠한 필요는 정치적 이유가 아닌 다른 이유 때문일 수 있고, 또한 정치적 정언들과 대립되더라도 계속 존재할 수 있다. 실존적인(그러니까 미학적인, 성적인, 관계적인, 감정적인)필요들, 특히 독자성에 대한 경우가 그렇다. 실존적인 필요들이 갖는 상당한 자율성을 인정하지 않고 정치적 정언에 종속시키려 한다면, 그 필요의 최소한의 발현조차도 반드시 큰 정치적 이탈이나 배반으로 간주하고 지속적으로 탄압하게 된다. /p47

프롤레타리아의 권력은 '자본'의 권력과 정대칭의 관계에 있다.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마르크스는 부르주아가 "자신"의 자본에 대해 소외되어 있고 자본의 공무원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매우 잘 보여주었다. 그런데 프롤레테르들도 그 동일한 '자본'을 "집단적으로 소유하게"될 프롤레타리아에 의해 소외될 것이다. ...(중략) 다시 말해, 프롤레테르들의 독자적 능력을 파괴시킨다. 이 작업이 완성되면,  프롤레테르의 완전한 타율적 노동은 다른 대다수 노동자들의 노동과 결합할 때만 유용성을 갖는다. 이 노동은 완전하게 사회적이다. 경우에 따라 이 노등에 어떤 능력이 전개될 수 있지만, 이 능력은 노동을 시행하는 사람에 대해서 전적으로 이용가치를 결여한다. 곧 노동자는 결코 개인과 가족과 관련 있거나 사적인 목적을 위해 이 노동을 이용할 수 없다. /p49-50

우리에게는 "임금을 받는 강제된 노동"이 폐지되거나, "생잔자들이 연합을 이뤄 자연과의 교환관계를 집단적으로 통제하는 일"이 일어나기란 요원하다. ...(중략) 프롤레테르들은 자신들의 완전할 헐벗음을 내면화하며 부르주아 세계의 폐허 위에서 보편적 프롤레타리아 사회를 이루어내는 대신, 자신들의 완전한 의존성을 인정하고 자신들을 책임질 것을 요구하기 위해 헐벗음을 내면화한다. ...(중략) 그들은 자신들의 노동이 그들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사회를 위해서만 효용성이 있기 때문에, 사회가 자신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마련해주고 자신들의 모든 노동에 임금을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프롤레타리아는 임금제 폐지를 주장하는 대신 임금을 받지 않는 노동은 모두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계급적 요구가 이런 식으로 대중적 요구로 바뀌는데,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즉 계급적 요구는(원자화되고 서로간 연결성이 없는 프롤레테르들로 구성된) 대중의 소비에 대한 요구로 바뀌고, 이 경우 프롤레테르들은 사회로부터, 다시 말하면 권력으로 부터, 현실적으로 다시 말하면 국가기관으로부터 그들이 갖거나 창조하기가 불가능한 것을 받기를 요구한다. 이때 권력을 쟁취하기 위한 노동계끕의 투쟁은 권력의 지위에 자신들의 대표자를 앉히기 위한 대중적 행위로 축소된다. 공산주의로 이행하는 단계인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국가가 노동자들의 요구를 들어주는 상황으로 축소된다(그나마 이런 일도 국가의 지도층 내에 국가수익을 분재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 덕분에 가능하다) "민중의" 권력이나 "사회주의적" 권력을 위한 프로젝트가, 국가가 모든 것이고 사회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정치적 프로젝트, 언제나 스스로의 존재를 완전하게 박탈당해 있는 동시에 원자화된 노동자들로 구성된 대중이, 정당 지지자라는 형식을 통해 국가를 운영하는 정당이나 야당과 연결되어 있는 정치적 프로젝트와 혼동된다. /p54-56

그런데 그 부정의 가능성은 비록(다른 한편으로는 사르트르에게서와 마찬가지로) 마르크스에게 존재론적으로는 주어져 있다 할지라도, 문화적으로는 즉시 주어지지 않는다. 곧 자신이 객관적으로 생산과정의 톱니바퀴와 같다는 사실,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이 주체적 권력을 가진 연합한 생산자가 될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 이 두 사실의 차이점을 인식할 능력이 노동자의 조건에 본래적으로 내재해 있는 것은 아니다.

여기서 우리의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떤 조건에서 그 능력이 생겨나고 발전하는가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질문에 대해 마르크스주의 이론은 지금껏 대답을 제시하지 않았다. 더 안 좋은 일이 있다. 마르크스주의 이론의 예측들은 현실의 사건들에 의해 반박되었다. /p62

4. 노동자 권력

현재의 생산구조 틀 내에서는 노동자드이 권력을 갖는 일이 이렇게 물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그 틀 내에서는 조합의 권력만이 가능하고, 노동자들은 그 제도적 기관에 자신들을 대표할 수 있는 권력을 위임한다. 하지만 국회의 권력이 주권을 갖는 국민의 권력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조합의 권력이 노동자들의 권력인 것은 아니다. 조합은 자신에게 권력을 위임한 노동자들로부터 독립된 제도적 기관으로서 권력을 갖는다. ...(중략)

따라서 권력을 위해서는 바로 그 여지를 넓혀야 한다. 일은 사소한 문제가 아니다. 실제로 생산자들의 권력, 자치, 자주관리에 장애가 되는 요소들은 단순히 법적인 것이나 제도적인 것이 아니다. 장애는 물적인 것이다. 즉 장애는 공장을 구상하는 일, 공장의 크기, 공장의 기능방식에서 연유한다. 그리고 또 다른 장애가 있다. 공장들 전체를 운영하는 '자본가 집단'이 문제다. 사실, 군대나 관료기구 같은 모든 거대한 조직들과 마찬가지로, 대형 산업생산의 비밀은 그 안에서 아무도 권력을 갖고 있지 않다는 데 있다. 권력은 아무에게도 속해 있지 않다. 그것은 집단행위의 규칙과 목적들을 자유롭게 결정하는 상부의 인간들에게도 속해 있지 않다. 산업의 혹은 행정의 위계질서 밑에서부터 정상에까지 존재하는 것은 자신들이 섬기는 물적 시스템의 절대적이고 부동의 명령에 따르는 실행자들뿐이다. 모든 종류의 자본가, 경영진, 기업주들이 개인적 권력을 갖는 것으로 보이는 것은 시각적 환상이다. 위계질서의 하위에 있으며 "상부의 사람들"로부터 명령을 받고 개인적으로 그들의 전적인 영향력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눈에 그렇게 보일 뿐이다.

...(중략) 오늘날 학문과 기술 분야 출신의 관료들이 가진 권력은 본질적으로 기능적인 정당성을 갖는다. 즉 그 권력은 인간이자 주인인 존재에 속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인이 기업이나 기관이나 국각의 조직 내에서 차지하는) 기능이나, 직위에 속해 있는 것이다. "직위를 가진" 개인은 언제나 우연의 산물이며, 다른 인간으로 교체될 수 있고, 실제로도 그렇다. 그는 최고의 위엄도 도덕적 권위도 갖고 있지 않다. ...(중략) 권력이 고유하게 그에게 속해 있지도 않고 그로부터 나오지도 않는다. 그는 시스템의 결과물이다. 그는 관계들의 물적 시스템이 구조화한 데서 생겨난 존재고, 이 시스템 내에서는 현실적 법이 어떤 종류의 인간들의 중개를 통해 인간들을 노예화한다.

여기서 이런 노예화를 위해 그 물적 시스템이 의도적으로 생겨난 것인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내용은 이런 노예화는 그 시스템이 폐기되지 않고서는 폐기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현재 경험하는 대로의 산업시스템은 우리로 하여금 거대한 기계적, 관료적 조직들ㅇ릐 노예가 되도록 만들고 있고, '자본'의 권력 또한 자신의 공무원들의 중개를 통해 그러한 결과를 만들어낸다. '자본'의 전 기능과 관계에 종지부를 찍지 않은 채 그 공무원들을 몰아내겠다고 하는 건 분명 그 부르주아지를 단지 다른 부르주아지로 대체하겠다는 것이다. /p74-78

 /프롤레타리아여 안녕/앙드레고르/이현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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