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마술사가 곡예단을 이끌고 우리 마을에 들왔
다. 아무도 그를 부른 사람은 없었다.
마술사는 서부의 무법자처럼 쌍권총을 차고 있었다.
신기한 그의 사격 솜씨는 단 한 발에 날아가는 새를 떨어
뜨렸고, 500m 전방의 코카콜라 병뚜껑을 맞혔다.
하지만 이미 커크 더르러스가 나오는 영화를 본 사람
들은 그의 묘기에 곧 싫증이 났다.
그러자 그는 자기의 목에다 대고 총을 쏘았다. 사람들
은 놀랐으나 그는 죽지 않았다.
"저건 가짜총이다!" 한 사나이가 말했다.
"가짜총이라고 말한 분 나와보시오." 마술사는 웃으며
말했다.
마술사는 그 사나이에게 총을 쏘았다. 그 사나이는 대
번에 피를 흘리며 쓰러졌다.
"살인이다!" 사람들은 외쳤다.
"살인이라고 말한 분 나와보시오." 마술사는 엄숙하게
말했다. 아무도 선뜻 나서지 못했다.
"나는 불사신이오. 나를 믿지 못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
게 될 것이오." 마술사는 위협적으로 말했다.
그때부터 마을 사람들은 매일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
까지 억지로 재미없는 마술을 구경해야만 했다. 경건한
자세로 대오를 맞춰 서서, 그의 마술이 끝날 때마다 일제
히 박수를 치고 열광적인 환성을 올려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곡예단원들이 채찍을 휘둘러댔다.
그의 쌍권총이 한 자루는 진짜총이고, 한 자루는 가짜
총이라는 것을 곧 알게 되었지만 아무도 그런 말을 입 밖
에 내지 못했다.
드디어 이 장기 흥행의 소문이 퍼져, 세무서에서 관리
가 나왔다. 마술사는 우리에게서 매일 거둔 구경 값으로
세금을 냈다. 경찰서에서 경관이 오자 마을 사람들은 마
술사를 쫓아내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경관은 "단속할
법규가 없다"고 그냥 돌아갔다.
이제 우리에겐 자조와 협동의 길밖에 남지 않았다. 그
리하여 내일부터는 아무도 마술을 보러 가지 않기로 결정
했다.
과연 그렇게 될지 우리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내일을
기다리고 있다.
/김광규/우리를적시는마지막꿈/재미없는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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