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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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



설계자들 by 편린


"저도 젊었을 때 아주 멀리까지 간 적이 있어요. 돌아가기에는 너무 멀리 왓다 싶을 정도로 멀리 가버린 거죠. 하지만 막상 돌아 와보면 우리가 마음속으로 두려워하는 것보단 의외로 아주 짧은 거리죠." /p248

"인간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삶의 진짜 동기를 숨기고 산다고 하더군. 그래서 자기를 속이기 위해 끊임없이 가짜 동기를 만들어내야 하는 거지. 너는 너의 진짜 동기가 뭔지 모르지? 솔직히 지금 너도 네가 뭘 하고 있는지 모르는 거고? 내가 보기에 너는 우리와 하나도 다를 바 없어. 너는 이발사와 똑같아. 한자와 똑같고. 너는 이 세계의 설계자들고 아주 똑같아. 그러니 네가 바꿀 세상이라는 것도 결국 지금이랑 똑같겠지. 흰 고양이나 검은 고양이나 하는 짓은 똑같으니까." /p364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너 같은 사람을 꼭 한명 만나봤어. 파충류처럼 차가운 사람. 그들이 차가운 것은 이 세계보다 자기 자신을 더 혐오하기 때문이지. 그런 사람은 결코 다른 사람과 진심으로 악수할 수 없어.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악수하는 법도 모르거든. 너구리 영감이 그런 사람이었지." /p403

인간은 누구나 이 우주만큼 복잡하고 신비로운 존재다. 내가 만나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복잡했고 내가 만날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신비로울 것이다. 하마터면 그 복잡함과 신비로움을 그냥 지나칠 뻔했다. 청년 시절 나는 함부로 단정 짓고, 비판하고, 화내고, 미워했다. 그리고도 자신이 옳다고 믿었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 숲의 무뚝뚝한 나무들은 아무것도 단정 짓지 않는다. 아무도 배제하지 않고, 아무도 자신의 뜻대로 왜곡하거나 변형시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숲은 이 낱낱이 복잡한 모든 것들을 한자리에 같이 서 있게 하는 방법을 안다. 이 숲이 누구에게도 친절하게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것은 단 한 번도 문을 닫아본 적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숲의 당당한 무뚝뚝함은 그것 때문이다. /  p421 작가의말

 /설계자들/김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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