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에


9월 첫날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새벽녘에 빗소리에 잠에서 깼다. 빗소리를 들으면 다시 잠에 들다 깨다를 반복했다. 몸은 피곤해서 잠에는 쉽게 들었는데 이렇게 쉽게 눈이 떠지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말엔 벌초 때문에 시골에 갔다왔다. 잘 안쓰던 몸의 구석구석이 아프다고 아우성이다. 몸은 아파도 더운날 산속에서 땀을 빼고 나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벌초가 끝난 후 앉어서 멍하니 하늘을 바라 보았다. 쉬는 중간에 먹은 동동주의 취기 때문일까 몸도 마음도 취했다.

기차역에서내려 버스를 타고 조금 들어가면 할아버지집이 나온다. 집에 들어가기전 읍내라고 해야 할 곳에서 저녁에 먹을 것들을 샀다. 수박도 하나 샀다. 엄마는 걸어가기 힘들다며 택시를 타자고 하신다. 택시를 타니 편하긴 한다. 사실 버스를 타고 싶긴 했지만. 시골 읍내는 정말 한산했다. 더구나 장날이 아니여서 사람들도 별로 없었다. 엄마는 지나가다 동창을 만났고 우연히 들른 생선가계에선 주인이 삼촌의 동창임을 알게됐다. 동창이라고 믿기엔 너무 나이 들었던게 사실이지만.

마당에서 갈치조림을 고양이에 둘러싸여 저녁을 먹었다. 기대에 부풀어 수박을 잘랐지만 수박은 너무 익어 있었다. 한 조각도 먹지 못한채 고스란히 소의 차지가 되었다. 수박은 이제 끝물이였다. 엄마는 속았다는 것에 기분상해 하셨지만 아마도 일부러 속이지는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건너건너면 알 수 있는 사람들끼리 굳이 그럴 이유가 없을 테니까. 마당에 돌아다니는 고양이 중 한마리가 눈에 띄였다. 다리 하나가 잘려 있었다. 처음엔 다리 한쪽에 가려져 있는 줄 알았다. 그건 가려진게 아니라 없는 거였다. 할머니께 물으니 차에 치여 다리 하나가 잘렸다고 하신다. 마당의 고양이들은 나를 보아도 달아나지 않았다. 가까이 다가서거나 손으로 물리치지 않으면 움직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바닥에 누워있는 고양이들이 부러웠다.

집에 올라가는 길 다시 역으로 향했다. 저녁때의 분위기는 오후와는 또 달랐다. 이상했던게 이상한 음악소리 같은 것이 들려왔고, 조금 있다가는 종소리가 울려퍼지는데 어디서 나오는지 알 수 없었다. 사람들은 당연한 듯이 가만히 있었지만 난 궁금했다. 해가 질 무렵 어둑해질 때 들려오는 종소리는 어딘지 모를 이국적인 분위기를 가져왔다. 마치 소설속의 어떤 소도시 같기도 했다. 공상속에서는 종소리에 통제당하는 마을을 생각하기도 했다. 그 사이 다리는 무참하게 모기들의 습격을 받아 참을 수 없는 지경이였다.

사람들에게 반응할 때 목소리와 태도가 건조하고 강압적이라는 걸 느낀다. 내뱉고 나서 깨닫는다. 그렇다고 쉬이 고쳐지지는 않을 것이다. 의도적이든 아니든 그것이 중요한 건 아니다. 때론 남에게 보여지는 태도가 전부 일 수도 있다. 사람들에게 반응하는 태도. 사람들이 나에 대해 받아들이는 감정. 속으로 아무리 아니라고 해봤자 실재는 그것 뿐이다.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by 편린 | 2008/09/01 12:12 | 알수없는조각 | 트랙백 | 덧글(2)

트랙백 주소 : http://trompeur.egloos.com/tb/4586723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다락 at 2008/09/01 21:58
무던하게도 비가 내립니다. 때로 빗발이 거세질 때도 있지만, 하루종일 추적추적 내리는 비의 완력은 온순한 편입니다. 타인들을 거울 삼지 않은지 오래되었습니다. 그 변화가 단단함과 성숙에서 비롯되는 흔들리지 않음이라면 좋겠지만, 타인을 거울 삼지 않으면서 저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에도 소홀해져버렸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흘러보자, 부딪쳐보자 싶은 마음은 생에 대한 저돌적인 용기에서가 아니라, 현재를 직시하고 싶지 않은 도피성 사고에서 비롯됩니다. 지금 보니 추적추적 빗방울은 창 밖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제 마음의 웅덩이로 쏟아지고 있는 모양이지요.^^; 부끄럽지만 멜랑꼴리한 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ㅎ
Commented by 편린 at 2008/09/09 21:28
이제사 답글을 달기가 좀 뭐하지만 인상깊은 글이 있어서 여기에 올려봅니다. 글을 허락도 없이 가져와서 조금 죄송스럽지만.. '딜레탕트'라는 분의 블로그에 적혀있던 글입니다.

(중략)..멜랑꼴리는 인간의 자연스런 감정이며, 젊은나이뿐 아니라 60, 70이 되도록 사라지지 않는 매혹적인 감정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멜랑꼴리라는 것이 도무지 삶의 활력소가 되지 못하고, 제반 삶의 변화에 기여할 수 없다는데 있다. 더욱이 개인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한채 죽는 그 순간까지도 자기만을 골똘이 들여다 본다. 이런 식의 자기들여다보기의 말로는 결국 나르시시즘으로 귀착한다. 자신을 들여다본다는 점에서 자아성찰과 나르시시즘은 동일하지만 놓여있는 자리가 다르다. 가령 나르시즘은 자기만족이 중심이고 자기비판이 결여된데 반해, 자아성찰은 비판이 주류를 이룬다. 나르시시즘은 현실만족으로 머물지만 자아성찰은 자리를 박차고 앞으로 나아간다. 멜랑꼴리는 심지어 타인의 감정, 타인의 고통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차용한다. 이를테면 타인의 슬픔조차 끌어들여 멜랑꼴리적 소재로 삼는거다. 멜랑꼴리는 안으로, 안으로만 파고드는 어떤 감정이다. 그러다 결국 소멸하고마는 지극히 사소한 감정

'멜랑꼴리'라는 단어가 눈에 띄어서 그랬나 봅니다. 의미하는 바가 서로 다르겠지만 우연찮게 단어가 중복되기에 한번 옮겨봤습니다. ^^;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