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6월 21일
정체성
"장-마르크, 무슨 말을 하는 거예요. 난 웃지 않아요. 난 두 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세요. 두 개의 얼굴을 갖는 것에는 어던 재미를 찾는 법을 터득하기도 했지만 아무튼 두 얼굴을 갖는 다는 것이 쉽지 않아요. 노력을 요하고 규율을 요구하는 거죠! 내가 하는 모든 일은 싫건 좋건 간에 잘하고 싶은 야심을 갖고 한다는 것을 아셔야 해요. 직장을 잃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하기도 하지만요. 완벽하게 일을 하면서 동시에 그 일을 경멸하는 게 아주 어렵지요."
"아. 당신은 할 수 있겠지, 능력이 있으니까, 천재잖아" 하고 장-마르크가 말했다.
" 그래요, 난 두 얼굴을 가질 수 있어요. 하지만 한꺼번에 두 얼굴을 할 수는 없어요. 당신 앞에서는 내 일에 대해 비웃는 얼굴을 하지요. 하지만 사무실에서는 심각한 얼굴을 하고. 나는 우리 회사에서 일자를 찾는 사람들의 서류를 처리하고 있어요. 그들을 추천해 주거나 부정적 회신을 하는 게 내 업무예요. 편지에서 완벽하게 현대적 언어로 모든 표현과 전문 용어와 의무적인 낙관주의를 동원하여 자기를 표현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들을 만나거나 이야기를 하면서 그들을 미워할 필요는 없지요. 하지만 누가 열심히 일을 잘할 것인지는 알아요. 그리고 그들 중에는 한때는 철학, 예술사, 불어교육에 종사했던 사람들이지만 지금은 별 도리 없이, 거의 절망에 빠져 우리 회사에서 일자리를 찾는 사람들이 있지요. 그들이 속으로는 자신이 희망하는 자리를 경멸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들도 나와 같은 부류라는 점도 난 다 알아요. 그래서 나는 결단을 내려야만 하죠."
"어떻게 결단을 내리지?"
"어떤 때에는 호감이 가는 사람을, 어떤 때에는 일을 잘할 것 같은 사람을 추천하죠. 나는 반쯤은 우리 회사의 배반자처럼, 반쯤은 내 자신에 대한 배반자처럼 처신하죠. 이중배반자인 셈이죠. 그리고 이런 이중배반의 상태를 실패가 아닌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얼마 동안이나 나의 두 얼굴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까요? 진이 빠지는 일이거든요. 어느 날엔가 하나의 얼굴밖에는 갖지 못하겠지요. 물론 둘 중에서 나쁜 쪽 얼굴이지요. 심각한 얼굴. 타협적인 얼굴. 그래도 나를 여전히 사랑할 건가요?" (중략)
샹탈은 시누이가 말한 것을 듣다가 이혼 후에 그들과 연락을 주고 받지 않은 것에 대해 그녀가 당연히 (거의 당연히) 화를 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샹탈은 다른 가족과 자신이 다르다는 점을 내비치지 않은 채 너무 오랫동안 그들과 살았다는 생각을 했다. 수년 간의 결혼 생활 동안 왜 그녀는 그토록 착하고 고분고분 했을까? 당신 그녀의 태도에 어떤 이름을 붙일 수 있을지 그녀 자신도 몰랐다. 순종? 위선? 무관심? 절도?
아들이 살아 있을 때에는 끊임없는 감시하에 살아야하는 공동체 생활, 공동체적 비위생, 수영장에서는 거의 의무에 가까운 노출, 화장실에 들어가면 그녀보다 먼저 사용했던 사람의 흔적, 미세하지만 당혹스런 흔적까지도 알게 되는 악의 없는 군집 생활도 기꺼이 감수했다. 그런 것을 좋아했을까? 아니다. 그녀는 구역질을 느꼈다. 하지만 그것은 부드럽고 조용하고 비전투적이고 체념적이며 거의 평화스럽다고 할 수 있는, 조금은 조롱기도 있었지만 결코 반항하지 않는 혐오감이었다. 아기가 죽지 않았다면 마지막 날까지 그녀는 이런 식으로 살았을 것이다. (중략)
.. 그는 이렇게 귀를 문에 대고 오랬동안 서 있었고 그녀는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다고 생각했다. 아마도 그녀가 가장 약하고 자기가 가장 강하다고 생각했던 것은 착각이라고. 사실 누가 더 강한가? 두 사람 모두 사랑의 영토 위에 있을 때 강한 살마은 사실 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일단 사랑의 영토가 그들 발밑에서 사라진다면 강한 자는 그녀이고 약하 자는 그이다.
- 정체성[밀란 쿤테라] P32,124,131
# by | 2008/06/21 11:50 | 트랙백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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