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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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



우연 또는 필연 by 편린


이 세대는 1940년을 전후해 태어났다. 자신이 그 구성원이기 때문에 이 세대의 특징을 나는 좀 안다. 이 세대는 남의 식민 압박에서 벗어나던 날의 큰 만세소리와 감격, 조국의 황토허리에 줄 그어지는 아픔, 같은 피붙이들이 불구대천의 적처럼 나뉘어 죽어라 죽어라 총 쏘아댄 저주받은 전쟁의 끔찍함, 빈 밥그릇 소리를 들을 때의 빛 한 점 없는 절망, 나쁜 진행에 대한 증오, 엉뚱한 질서를 맞아들여야 할 때의 답답함, 그리고 사랑의 중요함이나 자유, 정의, 평등, 평화의 귀중함에 대해 별도의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우리 세대는 유난히 고난 많았던 땅에 태어나 자라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그것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팔십년대라면 쿠데타 제1세대의 절대권력자가 그 동안 수도 없이 약속하고 또 약속했던, 온 국민이 도착해 아무 걱정이나 부족함이 없이 잘살 꿈 같은 낙원의 연대였다. 그러나 우리가 일생 중 제일 아름다운 이십대 청년시절부터 첫 군부독재시대를 살고 나이가 스무 살이나 더 들어 어렵게 도착한 팔십년대는 낙원 비슷할 것도 없었다. 우리가 살아야 할 곳은 국민의 피를 손에 묻힌 쿠데타 제2세대들이 장악한 세상, 특히 예술가들의 작업에 절대 필요한 자유와 상상력을 더욱 꼭꼭 눌러 지배할 또다른 반란 군부의 '산소 없는' 세상이었다.

우리 세대의 상당수가 그 세상에서 탄압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었다'. 이것은 우리 세대가 처음으로 겪은 일이 아니었다. 지난 역사를 보아도 이삼십대에 인간의 진짜 척추라 믿고 애써 간직하려고 했던 귀한 가치나 사회도덕적 규범들, 그리고 개개인의 마음속 소유인 아름다운 정신을 사십대 마흔 몇 살이 되자 밖으로 던져버려 '죽음'을 맞게 하는 일은 너무 흔했다. 누구보다 우리 자신이 잘 알고 있듯이, 자식을 두 명 정도 둔 사십대 가장들 모두가 그때 정치적 압제에 시달렸던 것은 아니다. 독재 기관의 감시를 받고, 체포되어 고문받고, 억지 재판 과정을 거쳐 차디찬 감옥에 갇히는 사람은 구성원 전체를 두고 볼 때 말할 수 없이 적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십대는 어느 세대보다 무서워하고 있었다. 다수가 무서워한 것은 캄캄한 집권 체제가 하수부역자들을 시켜 올바름에 맹렬한 폭력으로 가한 체포-고문-재판-투옥이 아이었다. 물론 잡혀 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참기 어려운 공포였다. 그러나 가만히만 있으면 자신과 가족에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무저항을 안전한 생활방식으로 터득한 사람들에게, 고문이나 투옥은 밤잠을 빼앗아갈 정도의 공포는 아니었다. 우리 세대가 사고체계에 고장을 일으킨 듯 온몸을 떨며 무서워한 것은 '실패자'가 되는 것이었다. 어느 사이에 제일 무서운 탄압은 경제적인 것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 다음 진행은 누구나 아는 그대로이다. 사회는 겉으로 보기에 평온해졌고, 국민의 힘은 자꾸 없어져 갔고, 주말이 되면 '성공한' 가장들은 아이들을 승용차에 태우고 교외로 나가며 발전하는 조국의 모습을 찍기 위해 나온 텔레비전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게 했다. 자기가 사는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이 재난의 성격을 띤 어떤 일이 되든, 눈물나는 가난과 언제 죽을지 모를 전쟁에 비하면 독재는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며 모진 무엇이 있으면 그것을 수정하고, 지지할 것이 있으면 지지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이로울 것 같으면 가만 있고, 누가 가난이라는 말만 입에 올려도 소르라치듯 놀라며 신경질내고 증오하고, 그러면서도 혼자 있을 때 거기서 멀어진 자신을 거울에 비춰 보는 마흔 몇 살 가장이 늘어갔다. 그때 우리 동시대의 한 작가가 괴테를 이야기했었다. 그것은 괴테 이후 오랫동안 문학뿐 아니라 모든 예술에 영향을 준, '성공을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 그 가슴 칠 이야기의 또다른 패러디였다.

쿠데타 제2세대의 집권기는 대중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공이나 실패, 또는 승리와 패배를 초월해 살겠다는 사람들, 특히 무슨 일이 있어도 악을 편들지 않고 끝까지 자기 자신의 세계와 진실을 지키며 '파괴를 견디겠다'는 고집불통 예술가들에게는 유난히 힘이 든 어려운 시기였다. 결국 현재의 언론이 이따금 쓰는 말 그대로 '군부 개발독재', '군부 권위주의'는 1961년부터 1993년까지 우리 세대의 황금기를 몽땅 '지배해 버리고' 뒤로 물러섰다. 그들의 시대는 우리가 아직 앳된 모습을 간직했던 새파란 청년시절부터 머리 희어진 쉰 몇 살까지 삼십이 년이나 계속되었다. 그 기간이 너무 길어 자신의 예술과 진실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었던 예술가는 몇 안 되었다. 물론 삼십이 년이라면 우리가 역사 속에서 되풀이해 마주치는 뛰어난 천재 예술가들이 출생과 성장, 교육을 거쳐 불멸할 명작들을 인류의 자산으로 남겨놓고 별이 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기까지의 생애를 고스란히 그 안에 담고도 남을 만큼 긴 시간이었다./p7-9

 /우연 또는 필연/강운구/영혼의 심장, 살아나는 집/조세희/학고재/1994년


행복하고 외로운 꿈 by 편린


순전히 나만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나 상황 자체보다도 그 상황에 자신의 입장을 투영시켜 보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김기찬 선생의 사진들을 들여다보면서 꿈을 꾸었다. 그 사진들 속에 나는 없지만, 사진을 보는 내가 사진 속 상황에 나를 투영시키면 사진 속에서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고스란히 인화되는 것이었다. 바로 그것이 내 꿈이 되었다. 꿈꾸기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나는 행복했다. 그리고 갈비뼈가 시리도록 외로웠다. 꿈꾸는 순간은 행복했고 현실을 돌아봤을 때 나는 가슴 시리게 외로웠던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예술작품들 중에 사진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꿈을 꿀 수 있는 행복과 그 뒤에 필히 오게 되는 가슴 시린 외로움에의 유혹에 내가 스스로 순응하는 것이 되는 것이리라.

다시는 회복 불가능한 '이전의 삶'을,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 버린 지나간 삶을 복원할 수 있는 길이 내게는 없다. 누군가 그랬던가. 글 아는 사람의 불행이란 달리 있는 것이 아니고, 그가 이제 다시는 글 몰랐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것, 바로 그것이라고. 글 아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불행으로 여기는 게 진정한 글 아는 자일 수 있다고. 또 누가 그랬던가. 작가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꿈꾸는 존재라고. 그래서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이라고. 불행하기 때문에 또 작가일 수 있다고. 미래만을 꿈꾸며 살았던 시기에 나는 지금보다는 덜 불행했을까. 아마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이제 과거를 꿈꾸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 순간부터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를 알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김기찬 선생의 사진들에서 나는 내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집과 그래도 내가 열망할 수밖에 없는 집을 본다. 그래서 내게 이 사진집은 다시는 복원될 수 없는 꿈, 그러나 내가 살아 있는 한 열망할 수밖에 없는 꿈에 관한 기록으로 '읽힌다'. 꿈을 꿀 때는 행복하고 현실을 돌아봤을 때 나는 외롭다. 황량한 삶 속에서 외로울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덜 불행한 것인가. /p5-8

 /잃어버린 풍경/김기찬/행복하고 외로운 꿈/공선옥/눈빛


선택 by 편린


겉옷 한 자락이 버스 문에 끼었다
잡아당겨도 잘 빠지지 않고
버스는 떠나려 한다
소리를 질렀지만
운전수가 듣지 못한 모양이다
버스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떻게 마련한 것인데
너무 아까워 포기할 수가 없다
어떻게든 옷을 빼내려 몸부림을 치지만
몸부림치면 칠수록
옷과 함께 몸이 바퀴 속으로
말려 들어갈 것 같다

옷 때문에
애면글면하다가
순간,
옷을 얼른 벗어버렸다

 /신미균/웃기는 짬뽕/선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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