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이데올로기가 세상에 나타난 것이 언제 어디서부터였는지는 분명히 알기 어려운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경제발전론은 예외입니다. 세계 규모로 경제발전 이데올로기가 나타났던 그 순간이 많은 학자에 의해 지적되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한 트루먼이 1949년 1월 20일의 취임 연설에서 "미국에는 새로운 정책이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미개발의 나라들에 대해 기술적.경제적 원조를 행하고, 투자를 하여 발전시킨다는 그런 새로운 정책이었습니다.
지금 이 정책은 너무나 당연시되고 있기 때문에 그 순간이 획기적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내기는 상당히 어렵습니다만, 당시의 경제학 논문을 보면 트루먼이 썼던 '미개발 국가(underdevelopment country)'라는 용어가 그 이전에는 쓰이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발표된 학술논문이 모두 실려있는 잡지 기사색인이란 게 있습니다만, 1949년의 연설 이전 것을 보면 '미개발 국가'라는 항목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근대화'라는 항목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1949년 1월 이후에는 그것이 점점 늘어납니다. 그리고 어느 사이 경제학이나 사회학의 전문용어로 정착이 됐습니다.
'발전(development)'이란 언어 자체가 트루먼의 연설에 의해 바뀌고, 다시 만들어진 말입니다. 무엇이 바뀌었냐 하면, 하나는 '발전'이 처음으로 국가정책이 되었다는 점입니다. 그 이전의 국가정책에서는 '발전'이라는 말이 사용된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미국정부의 정책 속에서 미국 국내의 상업을 진작시키려고 한 정책은 많이 있었습니다만 나란 전체를 '발전시킨다'라는 식의 표현은 없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미국의 국가정책이 되었고, 그리고 얼마 뒤 유엔의 정책이 되었습니다.
또하나 중요한 것은 발전을 한다고 할까, 발전을 당하는 나라가 미국이 아니라 다른 나라라는 점입니다. 경제발전 정책의 대상은 미합중국이 아니라 세계의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들입니다. 식민지에서 막 해방된 나라이거나, 혹은 아직 식민지 상태에 놓여있는 나라가 대상입니다. 지금은 그것인 너무나 당연한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일이 어느만큼 획기전인 일이었는지를 설명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p61-62
다시 트루먼의 연설로 돌아갑시다. 그가 발전을 이야기했을때 미국과 세계는 과연 어떤 역사단계에 있었을까요?
시기는 우선 제2차 세계대전 직후였습니다. 식민지를 가져서는 안된다는 내용이 유엔헌장에도 씌어지고, 그것이 새로운 상식이 됐던 때였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만, 유엔 본부가 뉴욕에 있어 그곳에 세계 여러 나라의 대표가 모였습니다. 그러므로 '야만'이란 말은 쓸 수 없게 됐던 것이지요, 그들은 모두 뉴욕의 신문을 읽을 수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쓰면 바로 들통이 나버립니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에서 대영제국도 일본제국도 무너지고, 프랑스제국도 네덜란드제국도 계속해서 무너졌습니다. 가장 힘이 있었던 것이 미합중국이었습니다. 이전 제국들의 식민지였던 '남(南)'의 국가들에 대해서 기본적으로 미국은 패권을 넘겨받은 단계였습니다. 소위 '제3세계'에 대해 미국이 세계에서 가장 큰 힘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옛 식민지 지배방식은 이제 사용할 수 없는 단계. 거기서 새로운 방법이 필요했습니다.
세번째는, 그 당시는 냉전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했습니다. 냉전은 어디까지나 냉전이었고, 미국과 소련이 직접 핵전쟁을 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냉전'을 어디서 하느냐, 제3세계입니다. 제3세계의 나라에서 미국과 소련 중 어느 쪽이 힘을 가지느냐 하는 격렬한 경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하나 이 역사적인 순간의 특징은, 전쟁이 끝난 단계에서 미국은 투자할 장소를 찾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게 제2차 세계대전은 경제적으로 매우 유익한 전쟁이었습니다. 전쟁 덕분에 불경기에서 탈출하면서 대단히 경기가 좋아졌습니다. 전쟁이 갑자기 끝나자 다시 불경기가 될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투자할 수 있는 장소가 필요했습니다. 거기서 미국은 '남'의 '미개발' 국가를 투자가 가능한, 좀더 투자하기 쉬운, 투자하면 이익이 꼭 돌아오는 경제제도로 다시 만들면 매우 도움이 된다는 생각을 했던 것입니다. /p67-69
1830년대에 이것이 변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무렵부터 미합중국 전체를 민주국가로 부르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도가 변한 것도 아니고, 헌법이 변한 것도 아니라, 민주주의에 대한 정의가 변한 것입니다. 대의제는 민주주의라고 하는 언어습관이 시작된 것은 이 무렵입니다. 동시에 민주주의 이념은 반대파의 이념에서 국가 이데올로기로 변하였습니다.
정부가 변한 것은 없었다 하더라도 작은 변화는 있었습니다. 사유재산에 따른 선거군 제한이 없어진 것이 이 시대입니다. (...중략) 이 선거권 확대에도 또한 재미있는 역사가 있습니다. 근대에 이르로 처음 민주주의가 논의된 것은 17세기 영국혁명의 시대였다고 생각됩니다. (...중략) 어떠한 의견인가 하면, 만약 토지를 갖고 있지 않은 사람에게 선거권을 준다면 그들은 압도적 과반수가 되기 때문에 당연히 정치권력을 통해서 사유재산을 평등화하려고 할 것이다. 즉, 우리의 토지를 빼앗고 말 것이라는 공포가 있었던 것입니다. 수평파 사람들의 평등관도 거기까지는 미치지 못했던 것이지요, 선거권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의견 쪽이 강했습니다. 수평파가 되풀이하여 주장했던 평등도 여전히 지주(地主)들 사이의 평등에 지나지 않은 것이었던 셈입니다.
그때부터 2세기를 경과한 19세기 전반에 이르러 지주나 사유재산이 있는 사람에게만 주어졌던 참정권 제한이 없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물론 각 나라에 따라 언제부터인지는 조금씩 달랐지만, 미국에서 남자만의 보통선거가 행해지게 된 것은 이 시대였습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해서 그것이 가능해졌던가. 그것은 이 200년 동안의 교육의 결과로서, 이제는 토지를 소유하지 않은 사람들이 정치권력을 가져도 재산의 평등화를 시도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자신이 붙었기 때문입니다.
즉, 평등이라는 정의(定義)를 고치는 데도 성공한 것입니다. 평등이라는 것은 단순히 결과로서의 평등이 아니라 기회의 평등이라고 고쳐진 것이지요. 기회의 평등이야말로 진정한 평등이라고 하는 교육이 그 시대에 이르러 미국 속에서 거의 정착한 것입니다. 정치권력으로 평등을 실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내가 노력하면 나도 지주가 될지도 모른다는 각 개인의 희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지주가 되지 않더라도 지주를 지키는 제도는 계속되기를 바라게 된 것입니다. 왜냐하면, 언젠가 자신이 지주가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경쟁사회의 기본적인 원리가 정착한 시대였습니다. /p126-127
/경제성장이안되면우리는풍요롭지못할것인가/더글러스 러미스/김종철/이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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