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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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명록



길에 관한 명상 by 편린

나의 결론은 간단하다. 나는 인간을 이중의 신체를 가진 생물이라고 생각한다. 첫째 신체는 생물로서의 그것이다. 둘째 신체는 인간 문명의 축적물인 정보의 집적이다. 이 정보 또한 우리의 제2의 신체이다. 인간은 보통 생활에서 이 이중의 신체를 전체적으로 활성화하여 사용하지 않는다. 그럴 필요가 없을 뿐더러, 그렇게 하면 우리는 생활할 수가 없다. 생활이란 언제나 시간과 공간 속에서 분화되어 계기적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화, 계기라는 형식은 우리의 자각의 정도를 기준했을 때의 말이지, 객관적으로는-즉 어떤 전능의, 혹은 전체의, 혹은 우주의 입장에서 본다면-우리의 생활은 전체, 무한과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재채기를 할 때 우주의 저 끝, 말하자면 반우주의 정확한 어는 곳에서 또 한 사람의 내가 어김없이 똑같은 재채기로 조응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생활의 모든 순간에서 이런 우주적 고속도 명상을 하면서 일거수일투족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어떤 형식으로든 이 실상에 대한 통찰을 갖지 않으면 우리의 생활은 천박한 것이 된다.이 모순을 해결하는 방법이 예술이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물론 상상력의 시공이라는 실험적 조건하에서. /p32 원시인이 되기 위한 문명한 의식

(...중략)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생물하고는 다른 것이, 생물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동일성을 유지할 수 있는 영혼의 평화가 선험적으로 보장된 존재 형태인데, 사람인 경우에는 생물로 태어나서 대과학자나 성인군자도 될 수 있는가 하면, 성인군자가 됐다가도 악마가 될 수 있고, 최고의 과학자가 됐다가도 능력이 쇠진해진다든지 육체적인 훼손 때문에 백치로서 일생을 마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를테면 인간을 의식적인 존재라고 할 때 그 의식적인 존재로서의 인간에게는 이른바 아이덴티티가 없다고 얘기하거나 혹은 아이덴티티가 있다고 하더라도 시시각각으로 자꾸만 불어나든지 줄어들든지 해서 늘 불안정한 반면 그것은 달리 말하면 원칙적으로 인류가 존재하는 데까지 가는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고 얘기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의식의 작용이 그런 것이기 때문에, 가령 한 사람의 작가면 작가, 학작면 학자의 경우 정신의 긴장이 강할 수밖에 없는 것이, 저 사람은 착한 사람, 저 사람은 교활한 사람, 저 사람은 활동적인 사람 하는 식의 의사(擬似) 동물적인 레테르와는 달리 그 사람의 지적인 성취가 지금 그래프상의 어디에 도달해 있는가 하는 것이 그 사람의 아이덴티티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 아니겠느냐 이런 생각을 갖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것을 내 경우에서 보자면, 최근까지 모색해서 탐구하고 어디 노트에다 적어두었던 지적인 결론들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많이 있더군요. 어떤 것은 몇 년씩 혹은 잠도 자지 않고 만들어놨던 정신적인 비전이 다른 일을 한다든지 여행을 한다든지 앓고 난다든지 할 때에 잊어버리는 부분이 많아져서 정신적 온도가 내려가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뭔가 제일 간단한 방식으로 내 사상이니까 나만 알아볼 수 있는 메모만 해두면 과거 몇 년 동안의 수준이 순간적으로 다시 부상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그래서 형태가 없는 작업에 종사하는 정신노동자의 자기 불안에서 오는 가장 직접적인 메모에 해당하는 것이 내가 비평에 있어서 주체가 돼본 흔적이 아니가...... /p89-90 변동하는 시대의 예술가의 탐구

몇 백년 전에 문학을 하는 것은 이미 존재하는 명문과 비슷한 글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어디까지 욕망할 것인가가 뻔했습니다. 그래서 도 닦는 사람들도 지금보다는 훨씬 쉽게 어떤 경지에 이를 수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현대인은, 멀리 갈 것도 없이 '나'를 예로 들어보자면, 나는 지금도 어떤 경지에 도달할 수도 없고, 목표라고 할 수 있는 것조차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실제로 나는 마음이 편해지는 정신적 경지라고 할 수 있는 것들을 가지고 있지 못합니다. 그리고 앞으로 10년, 20년 노력한다고 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압니다. /p313 기억이라는 것

[화두]라는 소설을 여러 가지로 접근해 말해보고 싶어요. 한국 사회의 '화두'를, 말하자면 내 머릿속의 풍경을 빨리 스케치해서 남긴 것이 [화두]에 대한 나의 창작 동기였는데, 그나마 내 수십 년 동안의 기억을 최소한 문학이라는 얼개로 내면의 암실에서 꺼내 정리할 수 있었던 것은 퍽 다행스러운 일이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만약 그 풍경들을 기록하지 못한 채 사라지게 했다면 나는 퍽 고통스러웠을 거예요. 그것은 내 눈에 보이는 정신적 축적을, 기억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들을, 무엇이라 부르건 나의 내면에 들어 있는 것들을 건지지 못한 상태가 되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문학이라는 얼개로 만들어졌을 때 [화두]가 되었지요. 혹시 그런 가운데 무슨 사고라도 있어 인화를 하지 못했다면, 또는 필름 속에 빛이 들어와 그것을 망치고 말았다면, 얼마나 아쉬웠겠어요? 내 정신적인 운동의 대강의 그림이 초고도 되기전에 소실되면 어쩌나 하는 공포의 연속이 글쓰기를 하는 내 마음 상태였습니다. 나는 그런 마음에 사로잡혀 내 내면에 있는 것들을 바깥으로 끄집어냈지요. 내 자신의 능력들을 끌어모아 [화두]를 쓸 수 있었던 것은 정말로 천만다행한 일이었지요. /p328 기억이라는 것

한 가지 비유를 가지고 설명하자. 열 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 손가락이 없다는 말이 있다. 중요한 장기가 병들었든, 손끝에 가시가 하나 박히든 인간은 똑같이 사로잡힌다. 인간의 육체는 심장이 손가락을 소외시키는 일이 없다. 육체라는 것은 상당히 이상적으로 우정과 사랑, 나와 너가 하나인 대단한 사랑의 조직체이다. 그러나 어떤 국가, 사회, 제국도 그렇게 순수한 육체의 조화로운 통일과 같은 유기성은 없다는 데 문명의 모순이 있다. 가령 어떤 사회에도 '천국이 따로 없다'고 생활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기본적인 물질적, 정신적 보장조차 못 받는 사람들이 공존한다. 그 사회에서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문제는 나머지 부분인데 그 부분을 어떻게, 어느 정도 아파하느냐 하는 것이 인류 역사 발전의 척도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건강 지수를 수치화하기는 힘들다. 그러나 현존하는 모든 국가나 사회와 마찬가지로 이상에 비추었을 때 부족한 사회인 것은 틀림이 없다. /p346 완전한 개인이 되는 사회

(...중략) 근본적으로 예술은 인류에 봉사하기 위해 존재한다. 불확정한 일보를 위해 암실에서 정밀 기계를 보고 있는 사람에게 우주는 사방 몇 센티미터에 압축돼 있다. 그런 사람에게 '너, 장난하는 거야 뭐야' '세상이 이렇게 넓은데 왜 암실에 있느냐' '인간은 대지를 밟고 서야 한다'는 등의 말은 소용이 없다. 나는 좌고우면할 틈이 별로 없었다. 남들이 내놓는 지도 이념으로는 만족할 없는 자기의 실험 요령이 필요했다. 그것이 표현이다. 최소한의 보편적인 형식 속에 자기의 영감을 표현하지 못한다면 괴로워 했다고 증명할 수 없다. 많은 예술가들이 천재 일보 직전에서 사라져갔다. 이름을 남긴 사람은 비슷한 수준까지 올랐던 다수 중 한 명이다. 

나는 작가라는 행위 지점이 어디인지, 내게 맡겨진 참호 속의 임무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 끊임없이 왔다 갔다 했다. 어느 지점에 고착돼 만족할 수 없었다. 그런대로 거기 머물러볼까 하면 반성 같은 것이 생기곤 했다. 왔다 갔다 한 것조차를 작품에 반영하려고 했다. 어떤 관측자인 경우에는 대지에 굳건히 선, 눈빛이 먼 미래를 뚜렷이 보고 있는 모습이 아니라 어떤 때는 흔들흔들하고 어떤 때는 싸울 의사가 있는지 의심스러운 모습으로도 비칠 수 있었다. (...중략) 사회주의가 말하는 인류 사회의 마지막 목적은 완전히 발전한 개인에 도달하는 것이다. 사회주의라는 이름하에 개인주의를 나쁜 것으로 폄하하고 개인은 전체를 위해 있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은 굉장히 엄중하고도 심각하게 첫 단추를 잘못 꿰고 있는 것이다. 모두 할 말이 있고 제 갈 길을 가는 것이다. /p349-350 완전한 개인이 되는 사회

/길에 관한 명상/최인훈/문학과지성사


우연 또는 필연 by 편린


이 세대는 1940년을 전후해 태어났다. 자신이 그 구성원이기 때문에 이 세대의 특징을 나는 좀 안다. 이 세대는 남의 식민 압박에서 벗어나던 날의 큰 만세소리와 감격, 조국의 황토허리에 줄 그어지는 아픔, 같은 피붙이들이 불구대천의 적처럼 나뉘어 죽어라 죽어라 총 쏘아댄 저주받은 전쟁의 끔찍함, 빈 밥그릇 소리를 들을 때의 빛 한 점 없는 절망, 나쁜 진행에 대한 증오, 엉뚱한 질서를 맞아들여야 할 때의 답답함, 그리고 사랑의 중요함이나 자유, 정의, 평등, 평화의 귀중함에 대해 별도의 교육을 받을 필요가 없었다. 우리 세대는 유난히 고난 많았던 땅에 태어나 자라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그것들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팔십년대라면 쿠데타 제1세대의 절대권력자가 그 동안 수도 없이 약속하고 또 약속했던, 온 국민이 도착해 아무 걱정이나 부족함이 없이 잘살 꿈 같은 낙원의 연대였다. 그러나 우리가 일생 중 제일 아름다운 이십대 청년시절부터 첫 군부독재시대를 살고 나이가 스무 살이나 더 들어 어렵게 도착한 팔십년대는 낙원 비슷할 것도 없었다. 우리가 살아야 할 곳은 국민의 피를 손에 묻힌 쿠데타 제2세대들이 장악한 세상, 특히 예술가들의 작업에 절대 필요한 자유와 상상력을 더욱 꼭꼭 눌러 지배할 또다른 반란 군부의 '산소 없는' 세상이었다.

우리 세대의 상당수가 그 세상에서 탄압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었다'. 이것은 우리 세대가 처음으로 겪은 일이 아니었다. 지난 역사를 보아도 이삼십대에 인간의 진짜 척추라 믿고 애써 간직하려고 했던 귀한 가치나 사회도덕적 규범들, 그리고 개개인의 마음속 소유인 아름다운 정신을 사십대 마흔 몇 살이 되자 밖으로 던져버려 '죽음'을 맞게 하는 일은 너무 흔했다. 누구보다 우리 자신이 잘 알고 있듯이, 자식을 두 명 정도 둔 사십대 가장들 모두가 그때 정치적 압제에 시달렸던 것은 아니다. 독재 기관의 감시를 받고, 체포되어 고문받고, 억지 재판 과정을 거쳐 차디찬 감옥에 갇히는 사람은 구성원 전체를 두고 볼 때 말할 수 없이 적은 소수에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도 사십대는 어느 세대보다 무서워하고 있었다. 다수가 무서워한 것은 캄캄한 집권 체제가 하수부역자들을 시켜 올바름에 맹렬한 폭력으로 가한 체포-고문-재판-투옥이 아이었다. 물론 잡혀 간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참기 어려운 공포였다. 그러나 가만히만 있으면 자신과 가족에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무저항을 안전한 생활방식으로 터득한 사람들에게, 고문이나 투옥은 밤잠을 빼앗아갈 정도의 공포는 아니었다. 우리 세대가 사고체계에 고장을 일으킨 듯 온몸을 떨며 무서워한 것은 '실패자'가 되는 것이었다. 어느 사이에 제일 무서운 탄압은 경제적인 것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그 다음 진행은 누구나 아는 그대로이다. 사회는 겉으로 보기에 평온해졌고, 국민의 힘은 자꾸 없어져 갔고, 주말이 되면 '성공한' 가장들은 아이들을 승용차에 태우고 교외로 나가며 발전하는 조국의 모습을 찍기 위해 나온 텔레비전 카메라를 향해 손을 흔들게 했다. 자기가 사는 세상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그것이 재난의 성격을 띤 어떤 일이 되든, 눈물나는 가난과 언제 죽을지 모를 전쟁에 비하면 독재는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며 모진 무엇이 있으면 그것을 수정하고, 지지할 것이 있으면 지지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이로울 것 같으면 가만 있고, 누가 가난이라는 말만 입에 올려도 소르라치듯 놀라며 신경질내고 증오하고, 그러면서도 혼자 있을 때 거기서 멀어진 자신을 거울에 비춰 보는 마흔 몇 살 가장이 늘어갔다. 그때 우리 동시대의 한 작가가 괴테를 이야기했었다. 그것은 괴테 이후 오랫동안 문학뿐 아니라 모든 예술에 영향을 준, '성공을 위해 악마에게 영혼을 판' 그 가슴 칠 이야기의 또다른 패러디였다.

쿠데타 제2세대의 집권기는 대중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성공이나 실패, 또는 승리와 패배를 초월해 살겠다는 사람들, 특히 무슨 일이 있어도 악을 편들지 않고 끝까지 자기 자신의 세계와 진실을 지키며 '파괴를 견디겠다'는 고집불통 예술가들에게는 유난히 힘이 든 어려운 시기였다. 결국 현재의 언론이 이따금 쓰는 말 그대로 '군부 개발독재', '군부 권위주의'는 1961년부터 1993년까지 우리 세대의 황금기를 몽땅 '지배해 버리고' 뒤로 물러섰다. 그들의 시대는 우리가 아직 앳된 모습을 간직했던 새파란 청년시절부터 머리 희어진 쉰 몇 살까지 삼십이 년이나 계속되었다. 그 기간이 너무 길어 자신의 예술과 진실을 온전히 지켜낼 수 있었던 예술가는 몇 안 되었다. 물론 삼십이 년이라면 우리가 역사 속에서 되풀이해 마주치는 뛰어난 천재 예술가들이 출생과 성장, 교육을 거쳐 불멸할 명작들을 인류의 자산으로 남겨놓고 별이 되기 위해 하늘로 올라가기까지의 생애를 고스란히 그 안에 담고도 남을 만큼 긴 시간이었다./p7-9

 /우연 또는 필연/강운구/영혼의 심장, 살아나는 집/조세희/학고재/1994년


행복하고 외로운 꿈 by 편린


순전히 나만 그러는지 모르겠지만, 사람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나 상황 자체보다도 그 상황에 자신의 입장을 투영시켜 보는 습관이 있는 것 같다. 나는 김기찬 선생의 사진들을 들여다보면서 꿈을 꾸었다. 그 사진들 속에 나는 없지만, 사진을 보는 내가 사진 속 상황에 나를 투영시키면 사진 속에서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고스란히 인화되는 것이었다. 바로 그것이 내 꿈이 되었다. 꿈꾸기의 결과는 어떠했는가. 나는 행복했다. 그리고 갈비뼈가 시리도록 외로웠다. 꿈꾸는 순간은 행복했고 현실을 돌아봤을 때 나는 가슴 시리게 외로웠던 것이다. 그리하여 모든 예술작품들 중에 사진을 들여다본다는 것은 꿈을 꿀 수 있는 행복과 그 뒤에 필히 오게 되는 가슴 시린 외로움에의 유혹에 내가 스스로 순응하는 것이 되는 것이리라.

다시는 회복 불가능한 '이전의 삶'을,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 되어 버린 지나간 삶을 복원할 수 있는 길이 내게는 없다. 누군가 그랬던가. 글 아는 사람의 불행이란 달리 있는 것이 아니고, 그가 이제 다시는 글 몰랐던 시절로 돌아갈 수 없는 것, 바로 그것이라고. 글 아는 것을 자랑으로 여기는 게 아니라 불행으로 여기는 게 진정한 글 아는 자일 수 있다고. 또 누가 그랬던가. 작가란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시간을 꿈꾸는 존재라고. 그래서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사람들이라고. 불행하기 때문에 또 작가일 수 있다고. 미래만을 꿈꾸며 살았던 시기에 나는 지금보다는 덜 불행했을까. 아마 그랬던 것 같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나는 이제 과거를 꿈꾸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그 순간부터 나는 내가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를 알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김기찬 선생의 사진들에서 나는 내가 다시는 돌아갈 수 없는 집과 그래도 내가 열망할 수밖에 없는 집을 본다. 그래서 내게 이 사진집은 다시는 복원될 수 없는 꿈, 그러나 내가 살아 있는 한 열망할 수밖에 없는 꿈에 관한 기록으로 '읽힌다'. 꿈을 꿀 때는 행복하고 현실을 돌아봤을 때 나는 외롭다. 황량한 삶 속에서 외로울 수 있는 것은 그나마 덜 불행한 것인가. /p5-8

 /잃어버린 풍경/김기찬/행복하고 외로운 꿈/공선옥/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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